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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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첫 글로, 무엇에 대해서 써야할까 한참 생각했다. 지난 일년 심창민의 팬으로 미친듯이 살아오면서 사라져버린 내 생활, 내 자리를 찾고 싶었고 어느새 절대적이고 배타적인 자리를 차지해버린 심창민에게서 조금은 벗어난 공간을 가지고 싶었다.
천천히, 오래오래...
무엇이든 천천히, 오래오래 긴 호흡으로 오직 ‘나’를 위해서 그게 이 블로그의 생성이유다.
물론, 현재 내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일부는 심창민이니까 Min`s Story는 가져왔다. 나머지 창민이의 사진, 영상, 시시콜콜한 팬질에 대해서는 카페에서 떠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Min`s Story 이외에 심창민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가 이 블로그의 원칙 중에 하나가 되겠다.
‘심창민 팬이 아닌 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면, 무엇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할까.
결국 내가 사랑하는 심창민이 아닌 사람들, 내가 좋아하는 심창민이 아닌 것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심창민이 아닌 부분들을 차지하는 공간이 ‘흔들의자’가 되어야겠지.
그래서 첫 번째 이야기로 무라카미 하루키를 골랐다.
하루키 말고도 전작을 가진 작가는 많지만, 폴 오스터, 알랭 드 보통의 전작을 가지고 있고 찾아보면 서너명 더 되겠지만, 그래도 역시 내가 처음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은 무라카미 하루키다. 
나는 하루키가 퍽 좋다.
하루키를 좋아한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까닭은, 워낙 호오의 경계가 뚜렷하고 감정의 간극이 극과 극인 성격을 가진 내가 좋다고 표현한다면,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이 용서가 된다는 것을 밝혀두기 위함이다. 왜 그것을 밝히느냐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밝혀두는 것이 양심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아주 늦게 하루키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상실의 시대 초판 발행이 1989년인데, 내가 가진 것은 1993년 발행된 18판이다. 결국 ‘상실의 시대’가 5년 동안 부동의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어도 나는 줄기차게 하루키를 무시해왔다는 뜻.
하루키 이전에 '가와바라 야스나리'와 ‘미시마 유키오’ 이외의 일본 작가들에게 호감을 가져본 적이 없다. ‘상실의 시대’를 줄기차게 무시해온 이유 중에 하나는 아마도 그가 일본 작가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엄청나게 민족주의 적인 성향을 가졌냐면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나는 지독하게 개인주의자이며 나름대로 '성깔은 있지만 편견은 별로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일본 작가는 안 내킨다, 가 내가 하루키를 냉대해온 오직 하나의 이유였다.
1993년, 고속버스를 몇시간 타야할 일이 생겨서 버스 안에서 읽을거리를 찾다가 우연히 집어든 책이 '상실의 시대' 였다. 네가 아직도 베스트셀러냐. 하는 고까운 마음이 조금 있기도 했다. 그런데 그 한 권의 책을 읽고 나는 그대로 하루키에게 매료되었고, 결국 그의 전작을 다 읽는 사태까지 이르게 되었다.
'상실의 시대'가 그렇게 대단한 책이냐면, 솔직히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상실의 시대'에 매료된 것은 오직 와타나베 때문이었다.
와타나베의 세상을 보는 시각, 삶을 사는 태도가 무척 좋았다.
와타나베 같은 남자가 있다면 연애하고 싶었다.
그냥 그렇게 시원찮은 이유로 나는 하루키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 후, 양에 관한 이야기들(양을 쫓는 모험, 댄스댄스댄스)을 읽으면서 조금 더 좋아졌고,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읽으면서 처음으로 헉! 소리를 내며 감탄했는데. 그 때도 나는 하루키의 무엇이 좋은지는 잘 몰랐었다. 그리고 드디어 '태엽감는 새'에 이르러 '나는 하루키를 좋아한다'라고 서슴없이 말하게 되었다.
사실 하루키의 책이 쉬운 책은 아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따지고 들자면 한도 끝도 없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쉽게 재미있게 읽힌다. 담긴 뜻 같은 거 몰라도 일단은 재미있다. 그것이 하루키를 매혹적이게 만드는 상당히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하루키 최대의 매력은 그의 뻔뻔함이다.
어떤 사람은 당당함이라고도 하지만 나는 솔직히 뻔뻔하다는 말만큼 그의 글에 잘 어울리는 표현을 찾지 못하겠다.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이야기를 마구 상상해내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 이야기를 쓸 수 있는 힘.
'스푸트니크의 연인'에서의 관람차 안에서의 뮤의 하룻밤이나
'태엽감는 새'에서의 우물벽안의 세계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의 세계의 끝
그리고 '해변의 카프카'에 이르면 더이상 할 말이 없어진다.
가끔 그런 장면들을 읽으면 소설을 쓰고 있는 하루키를 모습이 떠오르곤 하는데, 무지하게 뻔뻔한 얼굴로 '이 정도야 뭐 어떻겠어. 난 이런 이야기를 쓰고 싶다구' 하고 혼자 지껄이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서 즐거워진다.
하루키는 팬만큼이나 안티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은 그들의 문제이다.
나는 아무튼 그렇게 뻔뻔한 글을 쓸 수 있는 하루키가 좋고 그것이 뭐가 어떻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그렇다는 말을 한번쯤은 제대로 하고 싶었다.
가끔 내게 하루키의 작품 중에 어떤 것을 가장 좋아하는지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나는 망설이지도 않고 ‘태엽감는 새’를 고른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양을 쫓는 모험', '댄스 댄스 댄스'를 좋아한다. 그리고 '상실의 시대'와 '먼 북소리' 그리고 '스푸트니크의 연인'을 많이 좋아한다. '언더그라운드'와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는 별로 안 좋아하고, '해변의 카프카'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무지무지 좋아한다. '어둠의 저편'은 아직 한번밖에 안 읽었으니 선호도에서는 잠시 유보중이다. 1Q84도 과연 이것이 완결인지 알 수가 없어서 그냥 거듭 읽고 있는 중. 역시 판단은 유보중이다. 그런데 '태엽감는 새'에 이르면 글쎄, 뭐라고 표현해야할까. 심정이 무척 복잡해진다. 좋아한다, 혹은 별로 안 좋아한다고 이야기할 수가 없는 무언가 묵직한 것이 가슴 한가운데에 얹힌 기분이 된다. 복잡한 줄거리 때문이 아니다. 아무리 줄거리가 복잡해도 이 글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은 그 나름대로의 정당한 사연을 가지고 있으며 굉장히 정교하게 관계가 얽혀있어서 전체 이야기를 이해하기에 큰 무리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태엽감는 새’를 다섯번쯤 읽을 때까지는 늘 마미야 중위의 이야기가 마음에 걸렸었는데 다섯번 이상 읽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내 마음에 얹힌 오직 한 가지가 '우물'임을 안다. 이 책을 읽을 때면 나는 혼자 깊고 어두운 우물 속으로 내려가 나 자신, 내가 만든 세상을 대면할 자신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나 스스로 우물 아래로 내려가 단호하게 야구방망이를 휘두를 수 있는가, 생각하면 꼭 기름진 음식이 얹힌 기분이 된다. 사실 나는 아직 한번도 우물 밑바닥까지 내려가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진정한 나 자신을 마주 보고서도 내가 나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내 모든 삶을 던지고 싶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마저 든다. 인간의 내부에는 자기기만으로 이겨낼 수 없는 어떤 것이 숨어있을테고 그것을 만나게 될까봐 무섭다.
태엽감는 새
항상 우물이다..
귀
하루키의 작품 속에는 민망할 정도로 노골적인 섹스 장면이 나올 때가 많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많은 죽음이 들어있는 ‘상실의 시대’도 있다. 도대체 왜 그렇게 많은 섹스 장면과 죽음이 들어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하루키는 ‘섹스와 죽음에 대해서 지겨울만큼 쓰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다.
죽음이나 섹스와는 별개로 하루키는 아무래도 귀에 대한 페티시를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귀가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양을 쫓는 모험’에서 함께 양을 쫓다가 ‘댄스 댄스 댄스’에서 죽음으로 되돌아온 키키지만, 내 기억이 맞다면 와타나베도 나오코의 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고, 1Q84에서도 후카에리의 귀에 대해 상당히 공을 들여 이야기하고 있다.
하루키의 작품에서는 귀가 다른 무엇과의 통로 혹은 성적인 상징으로 종종 쓰이는데, 따지고 보면 성적인 자극을 주는 귀라고 해도 역시 다른 사람과의 통로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1Q84에서 후카에리의 귀에 대해 ‘갓 만들어진 귀’라고 말한다. 그리고 역시 내 기억이 맞다면 다른 책에서도 누군가의 귀에 대해 비슷한 표현을 쓴다. 갓 만들어진 귀를 가진 아름답고 특별한 여자아이. - 어쩐지 좀 섬뜩하다. 그런데 또 아름답기도 하다. 섬뜩하면서 아름답고 종잡을 수 없는 것. 그것이 하루키의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마무리
결론 없는 이야기다. 그런데 쓰다 보니 이런 게 내가 원했던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단지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만큼 하는 것. 나를 아는 누군가가 읽을 거라는 부담감 없이. 특정한 누군가를 의식하지 않고 그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
천천히, 오래오래, 아주 천천히 그렇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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